나는 왜 한국학을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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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한국학을 사랑하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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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안드레 슈미트 토론토대학 조교수] | |||
| 나는 한국을 갈 때마다 왜 한국사를 전공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대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나의 선대 중에 선교사가 있었다거나 혹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경험이 있었다는 등의, 정작 한국사를 공부하는 것과 직접 관계가 없는 다소 개인적 인연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고자 한다. 그렇기에 내가 “(한국사가) 중요하고 재미있어서”라고 대답해 버리면 한국인들은 적잖이 의아해 하거나 때로는 실망하는 기색마저 보인다. 그러나 나를 이 분야로 처음 끌어들인 것은 바로 “한국의 역사에 담겨있는 실로 풍부하고 매혹적이면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이다. 바로 이점에서 북미지역에 있는 대학들이 장차 학문적으로 한국학(Korean Studies)을 탐구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 한국의 모습만 보더라도 각 분야에 걸쳐 학계 연구자들의 관심을 자극할 만한 많은 이슈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정치학자라면 한국 민주주의의 전환 과정 또는 냉전시대의 국제 관계를, 인류학자는 인종과 재외동포 문제를, 경제학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정치경제체제에 대한 비교연구를, 역사학자는 민족주의와 식민주의와의 상호관계를, 사회학자는 세계화에 따른 성(性)과 계층 간의 문제를 연구할 것이다. 실제로 현재 많은 대학의 연구진들이 이 모든 분야에 대해 앞다퉈 연구에 나서고 있다. 한국학은 이 모든 분야에 걸쳐 - 유럽과 북미 지역 나라들의 연구 결과로부터 얻어진 가설들을 대체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 세계적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 단계 높이는 데 특별한 이점을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학 학자들은 비교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학계의 동료들로부터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러나 놀라지 마라. 바로 이것이 한국학 연구가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이 비교 연구의 중요성 그리고 한국학이 지적 탐구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학문적 잠재력을 깨닫고 있다.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전문 학술지의 편집자들과 발행인들은 한국적인 관점에서 이같은 현안들을 다루고 있는 연구 결과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학을 연구하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갑작스런 관심 증가는 몇 가지 위험요소를 수반하고 있다. 의욕만 있고 연구의 질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때문이다. 관심을 사로잡는 이야기는 끝이 없지만 이야기들에 담겨 있는 재미에만 의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호기심’은 역사를 ‘동양화(Orientalize)’시키는 함정(역사가들이 종종 ‘식민지 사관’이라고 말하는)으로 쉽게 빠져들게 한다. 한국은 에조틱한 나라이며 유럽과 미국의 지배적 시각에서 볼때 개발도상국가들이 갖는 모든 스테레오타입들이 한 나라의 독특함(uniqueness)을 찬미하는 형태로 다시 나타나게 된다. 한국학이 지향하는 목표 중의 하나는 지구촌의 과거와 현재에 걸쳐 불평등하게 형성되어 온 이같은 압도적 이미지로부터 확실하게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의 학자들을 흥분케 하는 목표이며, 북미대륙의 한국학이 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또 다른 문제는 불행하게도 많은 한국 관련 행사와 출판물들은 북미대학의 한국학 진흥을 저해하고 있다. 고조되는 관심에 성급하게 대응하다 보니 한국학 세미나와 출판물들은 대학의 기본적인 지적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들을 생산하고 있다. 지금은 정말 좋은 기회다. 그러나 대학의 학문적 기대와 요구에 못 미치는 연구성과들은 연구의 적당주의를 조장함으로써 기회의 상실은 물론, 학계에서 한국학에 대한 명성을 훼손하고 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학문의 질적 수준이 한국학이 대학에서 확고히 자리잡느냐의 여부를 좌우할 것이다. 연구와 거리가 먼 홍보성 이벤트, 간행물 그리고 컨퍼런스 등은 한국학이 북미대학의 연구과제목록에서 당당한 자리를 결코 차지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마이너 학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학이 학문의 한 분야로 자격을 갖춰나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첩경은 없다. 그러나 낙관할 수 있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지금처럼 한국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이 이처럼 많은 적은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대학원생들이 한국을 공부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가 가시화되면서, 다른 분야의 학자들은 한국역사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대학의 학문탐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도의 인류학자, 불란서의 정치학자, 그리고 캐나다의 역사학자들이 한국에 대한 최고 수준의 연구논문을 읽으면서 “중요하고, 훌륭한 연구”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할 때, 그때서야 우리는 한국학이 진정으로 제 위상을 차지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글: 안드레 슈미트 조교수(토론토대학) * 필자 안드레 슈미트 교수는 토론토대, 컬럼비아대학에서 동양학을 수학했으며, 현재 토론토대학 동아시아학부 조교수로 있다. 그의 최근 저서 '제국들 사이의 한국, 1895-1919년'은 아시아학회에서 수상하는 '2003년 John Whitney 최우수 저작상'을 수상했다. 근래에 그는 동아시아의 1600-2000년 역사에 대한 공동연구의 한국부분을 집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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