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제이빌

오퍼레이션캐롤라이나 문


미군의 북폭작전 "롤링선더"가 진행되면서  북베트남 남부의 "탄호아"철교는 집중적인 목표가 되었다.  강을 잇는 철교가 있는 이 지점은 대체할 만한 우회물이 마땅치 않은 관계로 파괴에 성공한다면, 한동안 북베트남의 군수보급에 지장을 줄 수 있었다.  미해군과 공군은 집중적인 폭격을 수행했지만,  스마트 탄이 보급되기 전인 당시로서는 파괴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철교는 전략요충지 답게 다수의 대공포진지로 방비되고 있었다.

탄호아 철교 공습을 그린 일러스트...

미군 정찰기가 찍은 북베트남군 대공포 진지..

벌집이 된 철교 주위의 지형... 그러나 성과는 1972년 5월 10에야 비로소 나타났다.

아래 사진참고..

작전의 개념은 다음과 같았다.  탄호아 철교 밑을 흐르는 강에 야간에 저공으로 침투해 부유가능한 특수 제작된 폭탄을 투하하면 이 폭탄이 사전 설정된 센서에 의해 목표인 교각에 접근하면 자동 폭발하여 철교를 파괴시킨다는 것이었다. 5000파운드에 달하는 폭탄은 강물위에 부유하기 위해 접시 형태로 제작되었고 직경이 무려 8피트에 달했다.  그 결과 이 폭탄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C-130허큘리스 수송기를 실전에 투입해야 했다.

우리의 호프, 허큘리스...  하지만 과도한 기대였다.

하지만, 일반 전폭기도 접근이 용이하지 못한 현실을 고려해 볼때 야간침투는 기본이고, 적절한 양동작전이 필요했다. 

1966년 5월 30일 저녁,

리차드 레머스 소령이 조종하는 허큘리스 수송기가 폭탄을 적재하고 작전에 나섰다.  허큘리스 항공기는  팬텀 전폭기와 전자전기 RB-66로 구성된 양동작전 팀이 주위를 끄는 동안 지형을 따라 저공으로 접근해 저공에서 폭탄을 투하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결과를 확인할때까지 체공할 수 없으므로 결과는 정찰기를 띄워서 확인하기로 했다.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지휘부는 정찰기의 사진에 크게 실망했다. 탄호아 철교의 교각은 무사했다. 아니, 피해가 전혀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폭탄의 센서가 오작동을 일으켜 적절한 폭발을 유도하지 못했거나, 부유력을 잃어서 물속에 가라앉은 것이리라...

결국 다음날인 31일 저녁,

케이스 소령의 허큘리스가 2차작전에 투입되었다.  소령은 전날 작전에 투입되었던 항법사 에드먼슨 중위를 탑승시키고 출격에 나섰다.

허큘리스 수송기가 목표에 접근할 시각, 철교 북쪽 몇 마일 지점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대규모 화염이 피어올랐다.  그 직후 기체와 교신이 끊겼다.    다음날 기체수색을 위해 정찰기를 띄웠지만, 기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격추되었거나 지상충돌한 것으로 보이는데 미군으로서는 그 위치를 찾는데 실패한 것이다.  이후 작전은 즉시 중단되었고,  승무원의 유해는 미국-베트남의 관계가 호전되면서 1986년부터 1998년사이 유해발굴팀에 의해 미국으로 귀환했다.

아래사진은  베트남 전장에서 손실된 허큘리스 기체들이다.  순수 수송기들의 사진이다.

아무튼 이 날의 무모한 시도로 인해서 다수의 조종사가 어이없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다. 적국이냐 아군이냐를 떠나서  이 사건은 상부에서의 "책상물림"장교가 꺼낸  공상적인 아이디어가 현실검토없이 작전화 될 경우 벌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런 작전에서 오늘날의 대안이라면 아마도...  B-2스피릿  일 것이다.  능력이 안되면 시행하지 말든지...

애꿎은 허큘리스 조종사만  새됐다.


웨딩휴 개념좀 알라 낭만투덜이 칠성사 구상 이사이사올 라스트 나이트 leon 자료실 밤쓰의 메타포 꿈꾸는 꼬마 철학자
2008/09/05 10:33 2008/09/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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